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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4번가의 연인(84 Charing Cross Road, 1986)" 리뷰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서 작성한 내용을 옮겨오면서 내용을 추가/수정한 글입니다.
영화 정보
- 제작 연도: 1987
- 국가: 영국, 미국
- 장르: 로맨스
- 상영시간: 1시간 40분
- 감상 가능한 곳 (2023.06.11 기준)
- 넷플릭스 (한국어 더빙 있음)
- 구글 플레이: 대여 (900 ~ 1,200) / 구매 (4,000)
감독/출연 정보
- 감독 : 데이빗 휴 존스
- 헬레인 헨프: 앤 밴크로프트 (졸업 - 로빈슨 부인, 지.아이.제인 - 여성 의원)
- 프랭크 도엘: 앤서니 홉킨스 (양들의 침묵 - 한니발 렉터, 토르 - 오딘)
- 노라(프랭크 아내): 주디 덴치 (007 - M)
줄거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입니다.
고전 작품을 즐겨 읽는 가난한 미국인 여작가(헬레인 헨프)가 고전 작품을 구하기 위해 영국에 있는 84 Charing Cross Road 에 있는 마커스 서점(중고 서점)에 편지로 책을 주문하면서 인연이 시작됩니다.
책을 주문하고, 책을 배송하고 계산서가 첨부되는 비즈니스 서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문학에 대한 감상과 애정들이 담긴 편지가 1949년부터 20여 년간 이어집니다.
추가 정보
- 책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원작이며, 작가는 헬레인 헨프입니다.
- 원제는 "84 Charing Cross Road"로 연인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감상
더빙
1986년 작품인데도, 넷플릭스에 더빙으로 있어서 보게 됐습니다.
고전이라 그런지, 영화의 형식 때문인지 더빙이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자막판을 먼저 보고, 더빙판을 보았는데 어떤 부분은 영문 자막 표현이, 어떤 부분은 더빙 표현이 상황 설명을 더 잘했습니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에서 본 한글 자막에는 '50대 후반'으로 소개되었는데 더빙에서는 30대 후반으로 이야기를 해서 대사를 확인해 보니 "he's in his late 30s..." 입니다.
연인?
우선 제목 '84번가의 연인'에 있는 연인은 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든, 흥행을 위해서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요.)
영화 속 역사적 배경
영화 중간중간, 역사적인 배경들도 담겨있습니다.
1949년 10월 5일, 여 주인공 '헬레인 헨프'가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첫 편지를 보내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영국이 당시 배급제로 인해 한 집당 일주일에 배급되는 고기가 50g, 계란은 일인당 한 달에 한개밖에 사지 못하는 환경입니다. (일주일에 고기 50g과 계란 한달에 하나라니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친화력이 좋은 헬레인은 배급제로 인해 구하기 힘든 식품들을 마커스 서점 직원들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환경이었기에 편지와 인연이 더 잘 이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1952년 영국 국왕의 서거와 여왕 즉위식, 윈스턴 처칠의 총리 당선까지 영국의 역사들이 있습니다. (전 잘 모르는 영국의 역사라 찾아봐야 했지만요.)
그리고 프랭크의 부고 소식을 들은 1969년에는 미국 대학가에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검색 결과, 68운동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20여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장치가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 편지는 뜸해집니다.
젊은(?) 배우들 모습
젋은 시절의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기준으로 젋은 시절인 것이고, 그 당시에도 배우들은 이미 50대입니다. (이 영화는 1987년 작품이고 앤 밴크로프트 1931년생, 앤서니 홉킨스 1937년생, 주디 덴치 1934년생입니다.)
한니발 렉터로 유명한 안소니 홉킨스의 젊음 모습과 꼼꼼하고 차가운 듯 하지만 또 문학을 사랑하는 따뜻한 면모가 있는 모습이 의외로 어울립니다. 주디 덴치는, 젋은데 왜 지금과 똑같을까요?
영화의 형식
영화의 형식 중 독특한 부분은 여 주인공이 편지를 작성하다가 화면 속 관객을 향해 말을 하는 듯 프랭크에게 편지하는 내용입니다.
주로 여주인공이 화면을 향해 이야기하지만, 프랭크 사망 전 마지막 장면에서는 화면을 통해 헬레인과 프랭크가 직접 편지가 아닌 서로 대화하듯 편지하는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마지 제가 편지를 직접 듣는 듯한, 마치 제가 프랭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프랭크가 느꼈을 헬레인의 직접 이야기하는 듯한 필력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겠네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화면을 바라보며 '프랭크 저 왔어요'라고 말하며 끝이 나죠.
영화가 보여주는 각자의 안정적인(경제적인 부분이 아닌 주변인과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도 좋습니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각자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냅니다. 문학에 대한 교류는 문학에 대한 교류이고, 각자의 삶들은 충실히 살아가는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교류의 형식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편지 내용과 주변인들의 결혼과 출산, 대화들로 시간의 흐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마커스 서점 직원들
마커스 서점의 직원들은 모두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솝과 로도피의 대화가 있는 책'을 구해달라는 주인공에게 '랜더의 일과 삶'이란 책에 있다고 회신하는 프랭크부터 작가의 이름은 기억 못 하고 괴이하면서도 색채가 선명한 과일이나 꽃 같은 정물화가 그려진 판화집을 찾는 손님에게 답을 주기도 하는 등, 직원들도 모두 책에 대한 애정이 많고 헬레인의 선물에, 각자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 등 인간적으로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때
프랭크 사망 후, 프랭크의 아내 노라는 편지에 '남편을 만나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가끔 편지드려도 될까요?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때론 당신을 질투했어요'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 하지 못할 때 생기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노력해도 관심사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본인은 함께 취미를 공유하지 못하는데, 누군가 그 취미로 친해지고 공유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질투도 나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극 초반 프랭크는 다른 직원에게 편지 내용을 알려주고 타자기로 치도록 합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는 무슨 이야기를 적을까 하는 듯한 즐거운 표정으로 직접 타자기를 치는 프랭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친화력이 좋은 헬레인 또한 주변 친구들과 매우 잘 지내지만 문학에 대한 애정을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에 대한 애정을 공유할 수 있는 프랭크와의 교류는 또 다른 의미의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마무리
영화의 끝에 마커스 서점의 사진이 나옵니다.
헬레인의 배우 친구가 이야기한 데로, '디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멋진 가게'였습니다.
주인공은 "영문학 속의 영국을 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영문학 속의 영국은 모르지만, 모르는 그것을 본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원작 책이 궁금해집니다.
아름다운 양장본의 책들과, 타자기로 작성한 편지, 책 배송 포장까지 이 영화가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들이 좋은데, 저는.. 전자책으로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